
야스쿠니 단체참배를 둘러싼 일본 집권 자민당의 움직임이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다시 한일 외교의 민감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산케이신문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스즈키 슌이치 자민당 간사장, 아리무라 하루코 총무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선거대책위원장 등 당 핵심 간부들이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함께 참배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자민당 주요 간부들이 개인적으로 참배한 사례는 있었지만, 핵심 집행부가 단체로 참배하는 것은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유신 전후의 내전과 일본이 일으킨 여러 전쟁에서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는 시설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전쟁을 이끌었던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처형된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에서는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자민당 내부에서는 이번 참배가 전몰자를 추모하기 위한 당 차원의 행동이라는 입장이다. 한 자민당 간부는 산케이신문에 “당 입장에서의 참배”라며 전몰자 추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은 주변국과의 외교적 관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오가와 준야 중도개혁연합 대표는 전몰자 추도 자체에는 정치적 입장 차이가 없지만, 여당 핵심 간부들이 집단으로 참배할 경우 인근 국가와의 관계 및 외교에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움직임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행보와 맞물려 주목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올해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지 않을 방침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는 구마모토 강진 수습 등 국내 현안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이지만, 한국과의 관계 개선 및 한미일 3국 공조를 고려한 외교적 판단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야스쿠니 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해 온 정치인이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에도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총리 취임 이후에는 직접 참배 대신 개인 명의로 공물을 봉납하는 방식으로 선을 조절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자민당 핵심 간부들이 집단 참배에 나서는 것은 총리 본인의 직접 참배와 당 차원의 보수적 역사 인식을 분리하는 정치적 선택으로도 해석된다. 교도통신은 일본 보수층을 의식한 움직임인 동시에 향후 다카이치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위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을 가능성도 짚었다.
이번 참배가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는 8월 15일이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인 반면, 일본에서는 태평양전쟁 패전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같은 날짜가 양국에서 서로 다른 역사적 기억을 불러내는 만큼 야스쿠니 문제는 단순한 종교시설 방문을 넘어 역사 인식과 외교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더욱이 최근 한일관계가 안보와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확대하고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공조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본 집권당 지도부의 집단 참배는 외교적 긴장을 다시 높일 가능성이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날 정부 주최 전몰자 추도식에서 어떤 역사 인식을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역대 일본 총리들은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과 ‘부전의 맹세’를 언급해 왔으나, 아베 신조 전 총리 집권 이후 해당 표현이 사라졌다.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지난해 13년 만에 다시 언급하면서 변화가 주목받았다.
일본 정부는 올해 전몰자 추도식과 관련해 영구적인 평화 확립에 대한 맹세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국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평화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배를 어떻게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태도다.
광복절을 앞두고 나타난 이번 움직임은 일본 보수 정치가 역사 문제와 국내 정치, 그리고 한일·한미일 외교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선택할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이 될 전망이다. 한일 양국의 미래 협력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과거를 지우는 것도, 기억을 정치적 대립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적 기억을 인정하면서 다시 충돌하지 않을 질서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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