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레디 병역기피자 보호법이 이스라엘 대법원의 위헌 판단으로 효력을 잃게 됐다.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에 대한 병역 예외를 둘러싼 오랜 갈등이 전쟁 장기화와 맞물리면서 이스라엘 사회의 병역 형평성 논쟁이 다시 거세질 전망이다.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대법원은 4일 군 입대를 거부하는 하레디 예시바 학생들을 체포로부터 보호하도록 한 법률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대법관 9명 가운데 8명이 해당 법률이 의무 병역 대상인 다른 시민들과 비교해 하레디 남성들에게 특별한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차별적 조치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결정에 앞서 대법원은 지난 7월 해당 법률의 효력을 일시 정지했다. 법원은 특히 크네세트가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시민들과 하레디 공동체 사이에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노암 솔베르그 대법관은 이번 판결이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크네세트 법률 자문관들이 법안의 문제점을 의원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는 이스라엘 정치의 복잡한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는 하레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샤스와 통합 토라 유대교의 정치적 지지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하레디 남성의 병역 의무를 확대하는 문제는 단순한 국방 정책을 넘어 연립정부의 정치적 기반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러나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상황은 더욱 달라졌다.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스라엘군의 병력 부담이 커졌고, 군 당국은 지속적으로 추가 병력 확보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에얄 자미르 IDF 참모총장 역시 해당 법안이 군의 필요와 명백하게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최근에는 하레디 공동체 내부에서도 병역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하레디 남성의 군 복무를 장려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내세운 새로운 정당이 출범했고, 8월 말에는 약 500명의 하레디 청년들이 IDF에 입대했다. 이들을 위해 엄격한 종교적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제도와 부대도 운영되고 있다.
이는 하레디 공동체 전체가 병역 문제에 대해 하나의 입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토라 연구에 전념하는 이들의 병역 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하레디 인사들은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국가 방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대법원은 종교적 신념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솔베르그 대법관은 판결에서 하레디 남성들에 대한 집행 절차가 진행되는 이유는 그들이 토라를 공부하기 때문이 아니라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스라엘 당국이 집계한 하레디 병역기피 대상자는 약 7만3,664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체포된 사람은 219명으로, 전체의 약 0.3% 수준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이 곧바로 대규모 체포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향후 정부와 군 당국이 실제 병역 의무를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남게 됐다.
하레디 정당인 샤스는 대법원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샤스 측은 이번 판결이 하레디 남성의 입대를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이스라엘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리예 데리 샤스당 대표 역시 IDF가 실제로 종교적 배경을 가진 병사들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병역 형평성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국가의 안보 부담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상황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장기전으로 인해 예비군과 현역 병력의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병역 의무의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이스라엘 정치와 사회의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법원 결정은 종교와 국가, 개인의 신앙과 시민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회가 어떤 균형점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최근 하레디 청년들의 실제 입대가 늘어나는 가운데 법원까지 병역 의무의 형평성을 강조하면서, 오랜 종교적 예외가 유지될 수 있는지와 동시에 하레디 공동체의 종교적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국가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마련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저작권자(c) 브릿지타임즈.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