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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징역에서 반세겔로

반징역이라는 현실을 넘어, 반세겔의 의미로 공동체를 다시 생각하다.

ChatGPT Image 2026년 7월 7일 오전 10 06 49

교도관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반징역을 산다.”

수용자는 형기를 살아가지만, 교도관은 매일 교정시설의 높은 담장을 드나든다. 출근과 함께 담장 안으로 들어가고, 퇴근하면 다시 가족과 사회로 돌아온다. 자유인이지만 하루의 상당 시간을 자유가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자조적인 표현이다.

그 말 속에는 피로와 긴장, 책임감, 그리고 쉽게 드러나지 않는 직업의 무게가 담겨 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그들의 삶을 ‘반징역’이라는 언어로만 기억해야 할까.

언어는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문화를 만든다. 자신을 계속해서 ‘반징역을 사는 사람’이라고 부를 때, 어느새 그들의 직업은 소명보다 희생으로, 보람보다 고단함으로 기억되기 쉽다. 사회 역시 그들의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이제는 다른 언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성경에는 ‘반세겔’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오늘날에는 다소 낯선 말이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 세겔은 화폐이자 무게의 기준이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0장에서 성막 공동체를 세우는 과정에서 모든 백성에게 반세겔을 드리도록 하셨다.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었다. 부자도 더 많이 낼 수 없었고, 가난한 사람도 덜 낼 수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반세겔을 드렸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공동체는 누군가의 큰 희생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신의 몫을 함께 내어놓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성경은 이 반세겔을 ‘생명의 속전’이라고 부른다. 속전은 생명을 대신해 드리는 값을 뜻하지만, 생명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내 생명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공동체를 위해 맡겨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었다.

그래서 반세겔은 돈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자신의 시간과 능력, 책임과 헌신의 일부를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내어놓겠다는 참여의 선언이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은 한 세겔이 아니라 ‘반세겔’을 요구하셨다. 인간은 혼자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각자의 절반이 모일 때 비로소 공동체가 세워진다는 상징처럼 읽힌다. 완전함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다.

이 지점에서 교도관들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교도관들은 자신의 시간을 내어놓는다.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내어놓고, 자유의 일부를 내어놓는다. 때로는 감정과 건강까지도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감당한다. 수용자의 변화와 사회의 안전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헌신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반징역’일까.

아니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놓는 ‘반세겔’일까.

물론 두 단어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반징역’은 현장의 현실을 담은 표현이고, ‘반세겔’은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적 책임과 참여의 상징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바뀔 수 있다. 현실의 무게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무게 속에 담긴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는 있다.

우리가 교도관의 삶을 ‘반징역’으로만 바라볼 때에는 희생만 보인다. 그러나 ‘반세겔’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놓는 헌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반세겔은 교도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에서 반세겔은 모든 백성이 드려야 하는 몫이었다. 공동체는 특정한 직업군의 희생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시간과 책임, 재능과 사랑의 일부를 내어놓을 때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교도관은 이미 자신의 반세겔을 드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내어놓고 있는가.

교정은 교도관만의 책임이 아니다. 출소자를 품을 준비를 하는 지역사회도, 회복의 기회를 만드는 제도도, 교정공무원의 안전과 성장을 지원하는 국가도 모두 자신의 반세겔을 내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공동체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반징역’이라는 말이 교도관의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였다면, 이제 ‘반세겔’은 우리가 그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되었으면 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소비하는 사회는 오래갈 수 없다. 그러나 서로가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내어놓고, 그 헌신을 기억하는 공동체는 오래 지속된다.

공동체를 살리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만이 아니다.

그 희생을 함께 짊어지려는 우리의 참여이다.

어쩌면 오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반징역’이라는 체념의 언어가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몫을 기꺼이 내어놓는 ‘반세겔’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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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코(PEPKO) 대표 성명규

<저작권자(c) 브릿지타임즈.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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