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중재자로 친러 성향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공개 거론하자 유럽 주요국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연합뉴스와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1일(현지시간) “슈뢰더가 중재자가 된다면 푸틴이 협상 테이블 양쪽에 모두 앉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칼라스 대표는 “러시아가 우리 측 협상가를 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며 러시아가 협상 자체보다 유럽 내부 분열을 노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 정부 역시 비판에 가세했다. 군터 크리히바움 독일 외무부 정무차관은 “슈뢰더는 과거에도 지금도 푸틴의 강한 영향 아래 있다”며 “개인적 친분은 가능하지만 공정한 중재자로 인정받기에는 어렵다”고 밝혔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장관도 “푸틴은 언제나 기만 전술을 사용해 왔다”며 “정말 종전을 원한다면 전쟁을 끝내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전승절인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유럽 정치인 가운데 슈뢰더와 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언급하며 그를 협상 상대로 거론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 총리를 지낸 슈뢰더는 퇴임 후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로스네프트 이사회 의장을 맡는 등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도 러시아 에너지 기업들과 관계를 끊지 않아 독일 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독일 연방의회는 그의 전직 총리 예우를 사실상 박탈하기도 했다.
슈뢰더는 과거 “러시아의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밝히면서도 “러시아를 영원한 적으로 악마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이번 푸틴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서는 별도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번 제안을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전술’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협상 자체보다 유럽 내부의 정치적 균열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독일 내에서도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 사회민주당(SPD) 인사들은 “유럽이 협상 논의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며 검토 필요성을 주장했고, 친러 성향의 극우 정당 독일대안당은 환영 입장을 밝혔다.
독일 공영방송 ZDF는 “푸틴이 독일 정부와 정당들을 분열시키는 데 이미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유럽 내부에서는 미국 중심의 종전 협상 구조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 러시아 간 직접 협상이 이어졌지만, 유럽은 주요 논의에서 배제돼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일간 FAZ는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지만 외교 협상에서는 주변으로 밀려나 있다”며 “유럽 안보의 미래를 미국과 러시아만 결정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협상은 단순한 평화 논의를 넘어 영향력과 질서 재편의 무대가 되고 있다. 누가 중재자가 되는가라는 질문 역시 결국, 전후 세계를 누가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경쟁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작권자(c) 브릿지타임즈.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