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나임 카셈이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 직접 회담을 “중대한 죄악”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협상 테이블 위에 놓인 평화의 가능성은, 다시금 이념과 신념의 벽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와 AFP 통신에 따르면, 카셈은 현지시간 27일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직접 협상은 단호히 거부한다”며 “이는 레바논의 국익에도, 현재 권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레바논 정부를 향해 “국가를 불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선택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의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입장 표명을 넘어선다. 카셈은 “직접 협상과 그 결과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며, 협상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했다. 이어 “레바논과 국민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저항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하며 무력 노선의 지속을 선언했다.
이번 갈등은 최근 중동 정세의 복잡한 층위를 그대로 드러낸다. 헤즈볼라는 지난달 이란을 지원하며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참여했고, 이에 대응한 이스라엘은 베이루트와 남부 지역에 대한 공습, 그리고 지상군 투입까지 감행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됐지만, 교전은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이미 2,500명을 넘어선 사망자 수는 이 충돌이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균형을 흔드는 구조적 갈등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레바논 정부는 미국의 중재 아래 두 차례 직접 협상에 나서며 평화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한쪽은 ‘국가의 생존’을 위해 대화를 택하고, 다른 한쪽은 ‘존엄의 보존’을 위해 저항을 선택한다. 평화는 언제나 선택의 결과이지만, 그 선택은 때로 서로 다른 정의를 가진다.
중동의 오랜 갈등은 단순히 총성이 멎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화가 죄악으로 불리는 순간, 평화는 언어를 잃고 다시 무력의 그림자 속으로 후퇴한다. 그러나 역사는 또한, 가장 깊은 대립의 자리에서 새로운 질서가 태어나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지금의 레바논과 이스라엘 사이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협상 이상의 무엇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지우는 언어가 아니라, 존재를 인정하는 언어. 그 언어가 시작될 때, 비로소 평화는 협상이 아닌 관계로 자라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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