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자 전후 질서를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제기된 ‘Board of Peace(가자 평화 위원회·평화협의회)’ 구상은, 단지 중동의 한 분쟁을 관리하는 장치로만 보기 어렵다. 그것은 국제질서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오랫동안 국제사회는 UN 체계를 통해 보편성의 언어를 확보해 왔다. 결의와 기구, 다자 협의와 국제규범은 느렸지만, 느림의 대가로 정당성을 축적했다. 반면 최근 제안되는 ‘보드’ 방식은 정당성의 축적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작동하는 틀을 만들고 그 틀을 통해 현실을 설계한 뒤 정당성을 끌어오려는 경향을 보인다. ‘초청장’과 ‘멤버십’이 세계정치의 핵심 장치로 부상하는 장면이다.
이런 변화는 UN에 대한 신뢰 훼손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가자에서의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 UN 산하 일부 체계가 중립성·감사·통제 측면에서 반복적으로 의심을 받았고, 직원 연루 의혹과 조사 결과, 각국의 평가가 엇갈리면서 ‘보편적 플랫폼’의 권위가 흔들린 측면이 있다. 여기서 핵심은 UN이 특정 무장세력을 ‘직접 지원했다’고 단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쟁과 붕괴의 환경에서 거대한 원조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질 수 있고, 그 취약성이 정치적 공방과 결합될 때 UN의 도덕적·제도적 권위가 빠르게 손상된다는 사실이다. 권위가 손상된 자리에는 늘 대안이 들어온다. ‘Board of Peace’가 겨냥하는 지점은 바로 그 공백이다. 그러나 공백을 메우는 방식이 곧바로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편을 우회해 속도를 얻는 순간, 대표성과 검증 가능성이라는 대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상은 그린란드 사태와 함께 읽을 때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논쟁은 ‘땅’ 자체보다도 ‘질서의 언어’를 둘러싼 충돌에 가깝다. 주권과 영토 보전이라는 규범의 언어가 중심에 서야 하는 문제에, 관세·압박과 같은 거래의 언어가 개입할 때 동맹 내부의 신뢰는 단숨에 흔들린다. 유럽연합이 덴마크·그린란드의 주권과 영토 보전이 협상 불가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며, 북극 안보 패키지와 투자, 쇄빙선 역량 강화 같은 조치를 거론하는 것은 단지 반사적 대응이 아니다. 그것은 “주권을 시장 가격으로 재번역하지 않겠다”는 규범 방어이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선택한 ‘재무장과 자율성’의 연장선이다. 러우전쟁은 유럽에게 방위를 정치적 옵션이 아니라 구조적 필수로 만들었고, 그 결과 유럽은 안보를 예산·산업·조달·공급망의 문제로 끌어올려 제도화하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서 EU와 NATO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EU는 정치·경제 공동체로서 규제, 무역, 투자, 예산과 산업정책을 통해 결속을 설계할 수 있다. 그래서 위기 앞에서 ‘정책 패키지’로 결속을 제도화하는 데 강점이 있다. 반면 NATO는 군사동맹이며 집단억지의 신뢰가 생명이다. 군사적 목표를 상향하고 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동맹의 핵심국 리더십이 거래적 언어로 흔들릴 때 정치적 신뢰가 빠르게 약화되는 취약점도 안고 있다. 그린란드 국면에서 덴마크와 그린란드가 NATO에 북극·그린란드 관련 임무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한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양자 갈등을 정면충돌로 방치하기보다, 동맹의 제도(임무·감시·협력 체계) 안으로 흡수해 균열을 봉합하려는 시도로 읽힐 여지가 있다. 즉 EU는 규범과 투자·산업의 언어로 결속을 보여주고, NATO는 임무와 억지 체계의 언어로 신뢰를 복원하려 한다. 같은 ‘서방’이라도 작동 방식이 다르고, 균열이 나타나는 위치도 다르다.
이제 다시 가자로 돌아가자. ‘Board of Peace’는 UN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명분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UN을 ‘기능적으로 대체’하려는 방향으로 설계될수록 국제사회는 더 큰 딜레마에 직면한다. UN은 완전하지 않지만, 여전히 보편적 조정 플랫폼이라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새 기구가 속도를 앞세워 보편을 우회한다면, 단기적 집행력을 확보하는 대신 “누가 누구를 대표하는가”라는 정당성의 질문을 더 크게 만든다. 특히 가자 전후 질서에서는 대표성, 원조·재건 자금의 투명한 감사와 감독, 전용(diversion) 방지를 위한 검증 체계, 민간인 보호의 기준과 위반 시 책임 추궁의 절차가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설계도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더 빠른 엔진이 더 안정적인 질서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검증 없는 속도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집행을 지연시키며, 지연은 다시 분열을 심화시킨다.
이 문제를 ‘이스라엘’이라는 렌즈로 보면 국제정치의 핵심이 압축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은 인권·국제법·안보·자결·구호의 중립이 동시에 걸린 ‘가장 첨예한 검증의 현장’이다. 여기서 국제사회는 늘 두 가지 기준 사이에서 긴장한다. 하나는 보편적 규범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생존과 억지의 기준이다. 문제는 어느 한쪽이 거짓이라서가 아니라, 서로의 기준을 상대의 위선으로만 번역할 때 협상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데 있다. 지금의 ‘보드’ 구상과 그린란드에서의 거래적 압박은, 각각 다른 전선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보편적 절차가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질서를 다시 세울 것인가. 초청장으로 구성된 선별적 연합체가 보편을 대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연합체가 보편을 대체하는 순간, 세계는 더 평화로워지는가 아니면 더 분열되는가.
결국 관건은 속도와 정당성의 균형이다. 새로운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구가 성공하려면 UN의 약점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UN이 축적해 온 보편성과 검증 가능성을 자신 안에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린란드에서 주권이 거래의 언어로 재번역되는 순간 동맹의 신뢰가 흔들리듯, 가자에서 평화가 초청장의 언어로만 설계되는 순간 정당성은 흔들릴 수 있다. 지금 국제정치가 맞닥뜨린 전환점은 새로운 깃발의 선언이 아니라, 그 깃발이 설 자리의 조건—투명한 책임성, 검증 가능한 절차, 그리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을 먼저 마련하는 데 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갈등은 그 조건을 가장 먼저, 가장 가혹하게 시험하는 현장이다. 동시에 그 조건이 다시 세워질 때 변화가 가장 먼저 감지될 곳이기도 하다.
* 본 사설은 브릿지타임즈 편집자가 국제 정세 관련 공개 자료와 보도를 검토한 뒤 작성한 원고를 기반으로 하며, 초안 정리·문장 다듬기·논지 구조화 과정에 ChatGPT를 보조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최종 원고에 대한 책임은 브릿지타임즈 편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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